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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 <131>내가 걸은 60 성상의 목장길 연재를 마치면서

열정을 다한 60 성상의 발자취 자료화해 공유
국제화 시대 선진축산 도약의 밑거름 되길

  • 등록 2018.02.28 11:13:00
[축산신문 기자]


김 강 식 고문((사)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1956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를 졸업, 군복무를 마치고 처음 발을 들인 축산관련 직장인 경기도립 안양종축장 촉탁으로 닭 사양관리 실무기술을 경험한 후, 1958년 미국의 지원 하에 전후 한국 농업 복구를 위해 새로운 정부기구로 발족한 농사원 시험국 연구조사과 축산연구사로 발령받아 일하게 된 것이 농업관계 공무원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1962년 7월 축산연구관(사무관급)에 승진과 동시에 연구조정과로 보직이 바뀐 이후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시험장을 위시, 12개 시험장 연구소의 시험연구사업의 기획을 총괄하는 기획계장의 보직을 맡게 됐다. 그 자리에서 1967년 10월 15일까지 1,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에 의한 농사시험 연구사업의 기획업무를 담당했다.
1967년 10월 16일부터 1969년 10월 15일까지 일본 농림성 축산시험장 영양생리부에서 반추가축(소 사양)의 소화 생리기능에 관한 기술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한우의 포유기 및 생후 6개월까지의 발육이 일본 화우, 미국 유럽의 아바디안 앵거스, 헤어포드 등에 비해 50~70% 부진한 원인이 포유기의 포유량 부족과 특히, 반추위의 소화기능 발달부진에 기인한다는 것을 2년간의 기술연수 중에 확인했다.
확인 후 1969년 10월 15일 귀국해 임의 귀국 전 4월 15일 축산시험장 육종번식과장으로 발령되었다가 12월 15일자로 영양생리과장으로 보직이 이동되어 1970년부터 한우 조기발육 부진 개선을 위한 포유기 송아지용 보조사료(인공유)를 개발했다. 생후 3개월까지 급여 104kg에서 이유한 한우송아지를 생후 24개월령까지 육성 비육한 결과, 655kg의 비육우 생산으로 대성과를 얻어 오늘의 한우 사육기반을 마련하고 1973년 8월 농촌진흥청 제2연구조정관(부이사관급)으로 승진, 1976년 5월 25일자 농림부 축산국장으로 부임하면서 70년대의 한국경제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수요가 증가되는 축산물 생산기반과 투자 재원인 축산진흥기금을 마련하고, 1990년까지의 축산진흥계획을 수립 확정 후 1979년 7월 18일자 농촌진흥청 축산시험장장으로 발령받고, 1988년 3월 21일(8년 6개월)의 축산시험장 장장으로 재직했다.
본인이 축산국장 시 1990년까지 수립한 축산 장기대책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시험연구에 전력투구했다가 1988년 3월 22일자로 농촌진흥청 발족 20년만에 농촌진흥청 산하 시험장 연구소장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농촌진흥청차장 보직에 임명되어 근무하다가 1993년 6월 30일(5년 3개월 재직)에 당시 허신행 농림수산부 장관의 사퇴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장 재직 5년 3개월(공무원 근무 36년)만에 자진사임 했다.
당시 허신행 농림부장관님과 정시채 국회 농림수산분과위원장을 비롯 주변분들의 한국육류수출협회 회장 취임을 권유 받았으나 WTO 수입개방 하에서 한국의 축산물이 북미, 호주, 유럽의 축산물과 경쟁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 회장 취임을 1차 사양했다.
그러나 돼지고기를 년간 50여만톤을 수입하는 일본시장에 우리 소비자의 비선호 저가부위인 안심, 등심, 후지육은 일본 자체 생산이 부족해 냉동육 상태로 대만, 북미, 유럽으로부터 수입하고 있고 수송거리와 가격면에서 특히 일본의 수입선호 안심, 등심, 후지부위를 일본시장에 수출할 수 있다고 분석되어 1993년 12월 18일자로 (사)한국육류수출협회가 농림부의 인가를 받아 정식 발족하고 초대회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이후 대일 돈육수출을 개시한 결과, 1992년 2천톤 수출이 1999년 10만3천톤(3억4천571만8천$)까지 수출하고 2000년 3월 20일 국내 구제역 발생으로 수출이 중단되고 말았다.
협회는 수출 잉여부위를 이용한 외식사업용 돈가스 소비확대를 위해 구제역 발생 하에서도 대일 수출이 가능한 열처리 가공품(소시지, 돈가스 등) 수출대책에 관한 조사연구를 1997년도에 당시 통상산업부 지원으로 하게 됐다.
일본 농림성 가축위생 담당과의 현지답사 조사결과 수출가공장으로 인정된 농협목우촌 가공장, (주)웰섬, (주)다인제주로 하여금 소시지, 돈가스를 제조해 시험수출 유통업계 및 소비자 반응이 좋아 수출을 추진하면서 1991년 공직 퇴임 후 2004년까지 15년간 육류수출협회 회장으로 돼지고기 수출시장 개척과 수출에 전념했다.
그러나 회장직을 사임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적당한 후임을 찾던 중 마침 농림수산부에 다년간 근무하다가 축산기술원 가축개량부장직에서 퇴임한 김남철 부장에게 2005년 2월에 회장직을 인계하고 본인은 협회 고문으로 물러났다.
그 이후 협회 고문으로 닭고기 대일 수출가능성에 관한 조사연구와 시범수출사업을 추진하던 과정에서 국내 AI 발생으로 수출이 중단되고, 열처리 돈육가공품(소시지, 돈가스)의 대일 시범수출에서 좋은 반응을 받았으나 전국 보급 추진을 위한 시장 개척에 대한 업체, 정부의 무관심으로 수출이 부진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과정에서 내가 걸어온 60 성상의 목장길 연재를 이번회를 마지막으로 끝마치려 한다.
먼저 1년반 동안 연재해 주신 축산신문사에 감사드리며, 본인이 농림수산부 축산국장 축산시험장장, 농촌진흥청 차장, 육류수출협회 회장으로 근무하면서 조사 연구한 모든 기술 및 정책자료를 정리해 농촌진흥청 도서관에 기증보관토록 해 금후 후배님들에게 참고자료로 이용하도록 하고자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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