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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축산과 농업 그리고 농촌의 미래!><14>홍수 위기서 한우 40여두 구출 사건

우사에 물 불어나 황급히 끌어내…강풍에도 순순히 이동

  • 등록 2017.05.24 14:47:59
[축산신문 기자]


문홍기 명장(장흥축협조합장)


유전자 분석을 통하여 분석한 결과 순수 흑모한우의 우수혈통이라면 보존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중간 단계의 부라만종 육성우를 제주도에서 가져온 그 당시 농촌에서는 부자집이 아니면 1년이 가도 쇠고기 한번 먹기 힘들었고 먹어보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쇠고기는 다 같은 줄만 알았고 부라만종은 잘 큰다는 소문으로 부라만종의 인기가 높은 때였다.
제주도에서 소를 가져와 기르기 전에 우사를 지어야 했다. 강진읍 영포리의 오래된 학교건물을 뜯은 헌 목재들을 직원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어깨에 메고 축협이 있는 서문리까지 1km가 넘는 거리를 가져왔다.
날씨가 더워 런닝셔츠만 입고 시내 뒤편 길로 가져왔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학교를 뜯은 긴 목재는 강진읍내 시가지 도로를 통과하기에는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다. (차량이나 소달구지는 긴 길이 때문에 이용할 수 없었음)
축사부지는 축협 앞의 넓은 밭에 있는 동산을 매일 매일 직원들이 삽과 리어카로 평탄작업을 해서 부지를 만들었다. 밭 앞에는 수 백년된 노송들이 우거져 그늘지고 남풍이 잘 들어오는 언덕바지에 축사를 짓게 되었다.
시멘트 블럭을 쌓고 그 위에 학교 뜯은 헌 목재를 걸치고 지붕은 스레트를 얹은 원초적인 다두축사의 출발이었다. 그 당시로서는 처음으로 계류식 우사를 지은 것이다.
그 당시는 경제적 여건이 매우 어려웠기에 최소 비용의 개념으로 우사를 짓게 되었다. 한쪽 지붕으로 지은 우사는 지금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이 불편했겠지만 그래도 외양간 보다는 편리했고 그 당시로서는 최선이었고 불편함도 모른 채 당연한 것이었다.
견봉이 높은 부라만종은 환경의 개념없이 지은 스레트 지붕우사에서도 더위에 강해 잘 자랐었다. 계류식 우사의 출발점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축산의 발전을 내다보고 계류식 우사에서 사육을 규모 있게 시작한 농가가 있었다. 강력한 태풍이 불고 큰 홍수로 인해 강진 앞바다가 질펀했던 날 저녁에 숙직실에서 혼자 숙직을 하고 있었다. 앰프방송에 홍수가 났으니 대피하라는 안내가 거듭되었다. 갑작스럽게 바닷물이 차오르는 것이었다.
남포리에서 한우를 많이 기르고 있던 농가가 생각나서 달려가 보았다. 축사에 물이 차오르고 있었고 그 조합원은 정신없이 소를 끌어내고 있었다.
계류식 우사에 메어있는 40여두의 소를 끌어내 물이 차지 않는 높은 곳에 우선 묶어두는 일을 혼자서 하고 계셨다. 모두들 대피하는데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필자와 함께하니 훨씬 빨라졌다. 일단 높은 곳으로 옮겼지만 안전한 강진 우시장으로 다시 옮겨야 했다.
우시장까지는 밤이라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고, 큰 암소가 아닌 중간단계의 소였던 것 같다. 한 마리 한 마리 끌어다가 우시장의 소 말뚝에 묶었다. 소를 모두다 강진 장으로 옮기긴 했지만 세찬 비를 다소라도 덜 맞도록 한우등에 비닐을 덮었지만 별효과가 없었다.
밤새도록 쏟아진 폭우속에서도 그 다음날 소는 모두다 건강했다. 이런 일은 유래 없는 태풍에 의한 것이지만 축사는 그 입지 선정에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기 됐다.
만일 계류식 우사가 아니고 현재와 같이 풀어서 키우는 우사에서 다두사육을 하고 있었다면 차오르는 물속에서 어떻게 되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계류식으로 묶어져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또 만일 도입 육우 헤어포드종과 같았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태풍이 몰아치는 어두운 밤 속에 이동할 때, 소가 순순히 잘 따라주었다. 만일 소가 튀였다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를 생각하면 한우를 ‘민족한우’로 애칭하는 것도 이런 이유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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