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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축산과 농업 그리고 농촌의 미래!><31> 사양시스템 새 패러다임 필요

청정 한우, 방목 사육 없어지며 각종 질병 노출

  • 등록 2017.02.03 11:05:09
[축산신문 기자]

 

문홍기 명장(장흥축협조합장)

 

무려 40년을 함께 논밭을 갈고 달구지를 끌면서 서로가 눈만 봐도 마음을 아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쟁기질이 끝나면 소가 좋아하는 풀을 하루 종일 베어 소에 먹이고 깔짚으로도 이용해서 퇴비를 만들어 농사를 잘 되게 만들었다. 옛날에는 소가 그 집 살림의 반이라고 했다.
한집에서 밥을 같이 먹는 식구와 다름없는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다. 농경문화의 농심(農心)으로 소와 함께 살아온 그 정신이 경제동물의 개념을 넘어 한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였다. 아무 경제성도 없는 늙은 소를 그냥 봉양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족의 개념으로 부모처럼 지극정성으로 노후 봉양을 하고 있었다. 농경문화의 농심(農心)이었다. 자연의 마음이었다. 순수함 그 자체였다.
자식이 부모도 잘 안 모시려는 세상에 함께 살아온 정으로 소에 대한 개념이 아닌 식구의 개념으로 주인은 주름투성이의 소를 쓰다듬고 있었고 소는 주인을 보며 풀을 씹고 있었다. 이것은 농경문화의 농심(農心)이 굳어서 화석이 된 정신으로 살아있는 농부의 숭고한 모습이었다.
10여년이 더 지난 후에 축내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그 분들의 집은 빈집으로 남아 있었고 또 다른 농가에서 나이든 소를 기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세월이 지나도 농경문화의 정신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어릴 적 전라도 농촌마을 사람들은 못자리에 씨를 뿌리고, 가꾸고, 모내기를 하고, 논에 김매기를 하고, 가을에 벼 베기를 하고, 탈곡을 하는 등 모든 것을 함께했다. 산에서 풀을 베어다 보리걸음(퇴비)을 만들 때도 온 동네가 함께 나서서 한 집 한 집 돌아가며 함께했다. 가을철 햇곡식을 거두어 집집마다 함께 모여 나누어 먹는 행사를 했고, 이것이 농촌마을의 작은 축제였으며, 제사를 모시면 떡 한 조각도 나누던 시절이었다.
들에 갈 때도, 산에 갈 때도 언제나 반려동물처럼 소가 앞장을 섰다. 소달구지를 끌고 논갈이 밭갈이 쟁기질을 하고 퇴비를 생산해 농사를 짓게 만드는 소는 농경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이 때의 소들은 그 당시에 특별한 질병도 없었고, 쟁기질을 계속해 지칠 때면 쇠죽도 잘 먹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 하는 거 말고는 송아지 설사도, 호흡기 질환도 없었다.
산속에서 소에 풀을 뜯기거나 방목할 때 진드기에 물리면 파이로 플라스마라는 질병도 젖소나 도입육우에는 치명적이었지만 우리 한우에는 면역이 생겨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만 고사리 중독이 문제였으나 한우는 좀처럼 고사리를 먹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오래토록 방목이 없다보니 한우의 피 속에 면역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한우는 수 천년동안 이 땅에 순화되어 있었다. 피부병(링웜)과 요네병, 브루셀라, 각종 호흡기병과 설사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도입육우와 함께 묻어 들어온 것이었다.
이제 소를 기르는 것은 질병과의 전쟁이 되고 있다. 또한 분만간격은 길어지고 번식장애는 많아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번식이 잘 되고 질병이 확산되지 않고 퇴치되어 갈 것인가? 모든 사양시스템도, 방역시스템도 재점검을 실시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틀을 짜가야 한다.
8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소 유행열이 대유행을 했다. 순식간에 전국을 휩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유행열의 주 증상은 고열로 기립불능과 폐가 늘어져 갑자기 폐사되는 질병이었다. 얼마나 빠르게 확산되었던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한우는 더 강했지만 젖소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장동면의 한 농가로부터 젖소가 기립불능으로 심하다는 연락을 받고 군청 직원들과 함께 출장을 나갔다.
젖소는 수의사들의 치료로 위기는 넘겼으나 일어서지를 못하고 있었기에 젖소를 밧줄로 묶고 4명으로 나누어 굵은 나무로 목도를 하여 들어 올려 일으켜 세우려 했다. 온 힘을 다해 들어 올리는 순간 큰 나무가 필자의 머리 숨골 위로 정통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죽을 것 같은 통증이 왔다. 사람들이 밧줄을 걸어, 치켜 올린 나무를 놓쳤기 때문에 전체의 하중이 필자의 머리를 쳐버린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심한 통증에 못 견딜 정도였으나 세월이 흐른 후 필자는 뇌수술 판정을 받게 된 적이 있었다. 그 무렵 필자의 젖소들도 유행열에 감염돼 목장에 비상이 걸렸다. 그 중 한마리가 기립불능으로 일어나지 못했다.
소를 뒷밭 초지에 옮기고 매일 수액을 주사하면서 상태는 호전되었지만 10일이 지나도 일어서지 못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애를 태우며 치료를 해도 20일이 지나도 일어서지 못했다. 23일이 되는 날 비행기가 이륙하듯 한참을 기다가 드디어 일어선 것이다. 그 때의 통쾌함이란 이루 말 할 수 없는 성취감이었다.
많은 질병은 우시장으로 집결되고 우시장에서 전파되어 나간다. 우시장의 소독 체제는 입구에서 차량에만 약을 뒤집어씌우지 소에게는 전혀 소독의 기회가 없다.
400여두를 기르는 농가가 우시장에서 소를 한 마리 사왔는데 처음에 그 소가 아프고, 다음에는 그 칸에 있는 소 전체가 아프고, 또 그 옆 칸의 소가 아팠다. 급기야는 전체 소가 고열로 아팠다.
농가에서는 처음 소가 아플 때부터 병성감정을 의뢰하고 철저한 방역과 치료 인력을 지원하는 등 치료는 계속됐다. 여러 사람 수의사의 왕진 결과도 불분명했고, 가축위생연구소의 결과도 확실치 않아 수원에 있는 수의과학연구소로 또 다시 병성감정을 의뢰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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