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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60> 매일 개최되는 물가대책회의서 깨지던 농림부 새 국장

  • 등록 2016.05.18 10:04:45
[축산신문 기자]

 

축산물 수요 대비 생산기반 확대 먼 길…물가 안정 시급
수입 판매차액 축산진흥기금 조성 제안해 정책 시행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착수 해인 1962년의 국민1인당 소득(GDP)는 87 달러에서 1970년에는 531 달러(610%)로 증가했다. 1975년 기준으로 하여 본인이 축산국장으로 부임한 1976년의 GDP는 32%가 증가한 700 달러로 1975년 대비 전체 물가는 12% 증가한 것에 비해서 식료품은 17%, 축산물은 39% 증가함에 따라 식료품 특히 축산물 가격안정이 정부의 중요 정책과제였다.
1975년 기준 1979년의 GDP는 329% 증가한 1천478 달러로 이에 따른 전체 물가지수는 62%, 식료품은 88% 증가에 비해 축산물은 124% 증가하여 물가안정을 위해 매일 개최되는 물가대책회의에서 깨지던 관계자는 농림부의 김주호 식량국장, 정용복 농특국장, 김강식 축산국장 이었다.
경제 성장은 1975년 기준 1979년까지 658% 성장 대비 전 소비자 물가 162%, 식료품 188% 증가에 비해 축산물은 215% 증가하니, 매일 아침 8시에서 9시까지 경제기획원에서 열리는 물가대책 회의에서 장덕진 차관에게 된 통 깨지기 마련이었다.
본인은 청와대, 국무총리실, 각 부처 관계관 참석자 앞에서 깨지고, 회의가 끝나자마자 차관실로 따라 들어가 “생산기반 조성 없이는 쇠고기, 돼지고기 가격안정이 도저히 불가합니다. 축산국장인 본인 스스로 농림부 장·차관님께 쇠고기, 돼지고기 수입하자고 말씀 드리더라도 농림부 장차관님 입장에서 쇠고기, 돼지고기 수입을 통해 물가안정을 하겠다는 정책결단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니 물가대책 위원장 입장에서 경제장관회의에서 쇠고기 도입을 논의하신 후, 대통령께 결심을 받아 주십시오. 그러면 우선 수입육 일부를 공급하여 가격을 안정시키겠습니다.”
이같이 솔직히 건의 드렸더니 “경제장관회의에서 논의해보지” 하셨다.
물가 대책위원장(경제기획원 차관)에 깨지는 것은 농림부 3명의 국장과 보사부 약정국장, 건설부 자재국장 이였다.
농림부 국장 중 김주호 식량국장은 쌀 값 안정을 위하여 지방으로부터 일별로 쌀 반입 일정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안심시키려는 스타일인 반면 식료품인 고추, 마늘, 무, 배추를 담당한 정용복 농특국장은 기후급변으로 고랭지 무, 배추의 상황이 좋지 않아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하여 자연스럽게 가격이 상승하는데 농림부가 어떻게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느냐고 대든 스타일이었다.
축산국장인 본인은 경제성장에 따라서 소비자의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생산기반을 확대하는 대책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체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당시의 국내 가축 생산기반으로는 도저히 가격안정을 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농림부 입장에서 외국으로부터 쇠고기, 돼지고기를 도입하자는 의견을 공식으로 물가대책회의 석상에서 이야기 할 수 없는 노릇.
그래서 어느 날 대책회의에서 위원장에게 기회를 이용하여 “쇠고기를 수입 할 때 부과하는 관세 45%를 수입육은 국내 소 값의 급격한 하락이 없는 한 일정가격으로 팔고, 그 차액은 축산진흥기금으로 조성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건의를 드렸더니 즉석에서 허락을 받았다.
며칠 후 당시 최각규 장관님은 경제기획원 장·차관님의 제의를 받고 쇠고기를 일부 들여오자는 이야기와 국내에서의 판매 차액은 한우증식 기반 확대에 투자하자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모른척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장관님은 내가 경제기획원 차관님께 건의한 사항을 알고 계셨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시 눈치 빠른 윤근환 차관보님은 김 국장이 장덕진 차관에게 아이디어를 주지 않았냐고 말씀 하시기에 어떠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웃고 말았다.
그 이후 1977년 12월 기획원의 장덕진 차관님이 농림부 장관님으로 오신 이후 물가대책에 열심히 협조한 김주호 식량국장은 기획관리관으로 승진시키고, 정용복 농특국장과 축산국장인 본인은 그대로 장관님을 1979년 1월까지 모시고 열심히 축산정책을 수행하였으며, 1979년 11월부터 1991년까지 축산장기계획을 당시 송찬원 축산과장(축산국장, 축협중앙회장 역임)과 이상무 사무관(농정차관보, 현 농어촌공사 사장) 및 각 과장과 같이 심혈을 기울여 장기계획을 작성하여 일사불란하게 추진을 준비하던 중 장덕진 장관님은 1978년 통일벼의 냉해로 인한 쌀 증산에 차질이 생겨 그만두시고 청와대 이희일 경제수석님이 농림부 장관님으로 취임하셨다.
수입육 판매차액을 축산진흥기금으로 쓰이도록 요청한 결과를 받아주셔서 본인이 축산국장을 떠난 1979년까지 812억원의 기금이 조성된 이후 2000년까지 조성된 축산물 판매 이익금이 2천507억원 조성되어 축산물 생산기반, 축산물 유통정비사업 등에 투자하여 오늘의 국내 축산생산기반의 투자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일생일대의 보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아쉬움은 1977년 6월에 제정한 축산물 판매부과금을 1982년 4월 1일부터 증수를 유예(81년 증수액 68억3천만원)한 것과 1990년 축산물 수입판매 이익금의 증수유예(90년 증수액 1천61억원)를 하지 않고 증수된 금액 1990년 기준 1천129억원을 매년 국내 생산기반 확충과 생산비 절감을 위한 예산으로 계속 투자지원 하였다면 국내 축산생산액의 증가와 동시에 생산비 절감으로 국제 경쟁력이 증가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국내 축산물 판매부과금 및 수입축산물 판매부과금 증수폐지를 물가당국으로부터 요청하였을 때 이를 장기 축산물 수급과 가격안정 측면에서 상대를 납득시키지 못한 것에 이 제도를 마련한 본인으로서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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