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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내가 걸은 60 성상(星霜)의 목장길> <54> 쇠고기 가격안정을 위한 시책 추진

축산물 수요 증가 대비 공급 부족…물가안정 최우선 과제
축산국장 맡아 비육사업 공격적 추진…수급안정 일익

  • 등록 2016.04.22 10:16:57
[축산신문 기자]

 

1970년 대비 1975년까지의 국민 1인당 소득은 223달러에서 531달러(238%)로 증가하면서 전체 육류 소비가  136%(22만4천734톤) 늘어났다. 이중 쇠고기는 188%(7만292톤)나 증가했다.
그런데 한우 사육두수는 1백27만두에서 불과 21.7% 증가한 1백54만5천두로 수요에 비해 공급부족으로 쇠고기 가격은 225% 올랐다.
당시 정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하여 축산물 증산 및 가격안정 시책 추진을 위해 본인이 1976년 6월 축산국장으로 차출 되었다.
1975년 기준 1981년까지의 쇠고기 수요는 165% 증가할 전망인데 비해 소 사육두수는 1976년 1백56만6천두에서 15% 증가한 1백80만5천두 정도이다.
이에 따라 축산물 수요증가에 따른 안정적 공급으로 당시 한우 평균 도축 체중 358kg을 450~500kg까지 늘리는 비육 사업을 최우선으로 했다. 1976년 기준, 비육 사업으로 입식된 4만1천900두에서 1981년까지 총 30만6천200두를 입식시켰다.
본인이 1973년 축산시험장 영양생리과장 시 인공유 육성 비육시험에 이어 1973년 297kg의 수소를 입식, 90일· 150일· 210일 비육한 결과 출하체중은 386kg· 455kg· 509kg로 당시 전국 한우 도축 평균체중 359.7kg(정육량 131kg)에 비해 정육생산량은 153kg(116%), 190kg(145%), 223kg(170%)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비육농가의 수익 역시 90일(386kg) 비육 출하 시 소득 9만1천890원 대비 150일 비육출하 시 11만9천200원, 7개월 비육출하 시 11만8천760원의 수익으로 이어졌다.
소 구입 자금으로만 지원된 비육 사업으로 입식된 5만500두에 1977년 추가로 6만1천709두를 입식, 비육우 11만2천209두와 일반우 27만4천694두를 출하하게 되었다. 그래도 7만8천톤의 쇠고기를 공급할 수 밖에 없어 부족량 5천톤을 사상 처음 수입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세부 추진계획으로는 비육 밑소 입식두수 5만8천500두를 1981년까지 30만6천200두까지 늘려 1981년 도축두수 59만8천134두 중 48만960두(80.4%)를 비육 출하하기로 했다.
비육우 입식농가에는 농협중앙회 사료공장에서 생산한 큰 소 비육용 배합사료 6만5천400원(800kg)을 해당 시·군 농협 또는 단위조합을 통하여 상순, 중순, 하순 또는 월별로 비육용 배합사료를 현물로 직접 공급하도록 했다.
시·군 농촌지도소의 축산전문 지도원을 월 2회 정도 비육 농가를 방문, 간이체중 측정방법으로 체중을 측정하여 체중에 따라 정량 사료를 급여하고 있는지를 점검지도 하도록 했다.
시·군 농·축협 및 단위조합은 시·군 관내 입식 비육우에 대하여 매월 농가별 체중별 사육두수를 농협지부에 보고하고, 이를 도 농협지회에서 농협중앙회에 보고하면 농협중앙회는 월말기준 각도별, 시군별, 월별 출하두수를 집계하여 농림부 축산국과 협의, 전국 각 도매시장(도축장)별 출하두수를 배정, 일사분란하게 쇠고기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였다.
계통 출하한 시·군 농·축협에서는 비육우 출하가격에서 현물로 제공한 비육용 배합사료 금액만 제외, 비육우대를 비육농가에 지불하고, 비육우농가는 비육 밑소를 구입한 전표를 해당 농·축협 및 단위조합에 제공하면 농협 사료공장이 생산한 비육배합사료를 현물로 다시 재공급하는 체계이다.
이렇게 하여 생산된 400~500kg의 비육우는 우선 농협계통이 운영하는 도축장에 계통 출하함에 따라 도축장 가동률이 100% 이상 되었다.
비육 사업초기 농림부가 비육 사업을 위하여 밑소 구입 자금만 지원할 때는 280~300kg의 소를 구입, 쌀겨, 밀가루 및 약간의 배합사료를 3개월 정도 먹여 비육하면 피부에 광이 나고 제법 통통해 360kg때 출하할 경우 5~6만원의 수익을 냈다.
1974년 축산시험장이 큰소 비육 시험한 DCP 7.59, TDN 72.61의 큰소 비육 배합사료를 일당 체중에 2% 급여 비육시 5개월(450kg)까지는 수익이 11만9천200원까지 되었으나, 6개월 이상 비육했어도 5개월(450kg) 이상은 비육하지 않은 것으로 계산하여 큰 소 비육시 출하체중 450kg까지는 보상금 3만원, 500kg 이상이면 5만원의 보상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실시함으로써 비육우 출하체중 358kg(정육량 131kg), 출하체중 458kg(정육량206kg)까지는 1년 내에 끌어 올릴 수 있었으나 그 이상은 비육농가가 따라오지 않아 당시 큰소 비육은 450kg에서 출하하도록 했다.
1977년부터 농촌진흥청이 실시하고 있던 육성비육 시범마을에 입식한 5천두에 대하여 두당 15만원(송아지 구입 8만원, 사료비 7만원)을 융자 지원하여 육성비육 체제로 전환시키고자 1979년도 각 도에서 1개 읍면내에 번식우 500두 이상 사육하는 면을 선정하여 번식우 시범단지로 조성했다.
단지 내에서 분만된 송아지에 대해서는 인공유를 급여하여 3개월 이유시 체중이 일정이상인 번식암소는 우량암소로 선발 지정하는 암소개량 사업과 육성 비육사업을 1979년 계획에 반영해 놓고, 그 해 9월에 축산국장에서 축산시험장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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