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디지털낙농, 데이터 독립의 첫발을 떼다

  • 등록 2025.04.16 08: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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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김상범 낙농과장] 제2차 산업혁명 이후 먼저 산업화를 이룬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확보하며 자원을 수탈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자원착취에 그치지 않고, 언어와 문화를 통제해 피식민지 국가들이 선진국의 종속 시민으로 사는 것이 후진 국민으로 사는 것보다 낫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100여 년이 지난 현재, 이러한 자원 쟁탈전은 데이터 중심의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데이터는 곧 자원이 되었으며, 특히 가축 생체 데이터는 낙농업의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낙농업은 디지털낙농의 핵심 장비인 로봇착유기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가축 데이터의 해외 유출과 기술 종속이 심화되고 있다. 이제는 낙농업의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고, 국산 로봇착유기 상용화를 통해 독자적인 디지털낙농 체계를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의 자원 수탈이 폭력적으로 이뤄졌다면, 현재의 데이터 독점은 보다 정교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신 ICT 장비를 도입할수록, 그 장비를 온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원본 데이터를 장비 개발국으로 전송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한민국 가축의 고유 데이터는 해외로 유출되지만, 그들의 데이터 공유는 언제나 제한적이다. 이처럼 데이터 흐름을 선진국이 장악하는 구조에서는, 우리가 데이터를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는 독립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로봇착유기는 개별 젖소의 체중, 산유량 등 생체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최첨단 장비이다. 이러한 장비가 수집하는 데이터는 낙농업의 생산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지만, 외국산 장비를 사용할 경우 원본 데이터가 해외로 유출되는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선진국들이 ICT 장비를 통해 데이터를 독점하고, 이를 기반으로 축산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는 상황에서, 우리는 단순히 외산 장비를 사용하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세차례의 도전 끝에 로봇착유기 국산화에 성공했고, 2025년 현재, 국내에 15대를 보급해 점유율 6%까지 끌어 올렸다. 또한, 착유 정보를 포함한 98개 항목의 데이터를 6만 건 이상 확보했으며, 이는 농촌진흥청 서버에서 통합 관리될 예정이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한국형 젖소 정밀 사양관리 기술’ 개발에 활용되며 개별 젖소에게 필요한 영양소 요구량을 정밀하게 산정해 사료비 절감과 분뇨 배출량 감소라는 목표를 실현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단순히 국산화에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본 오리온사가 2003년 아시아 최초로 로봇착유기를 개발했으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농가의 신뢰를 잃고 결국 사업을 중단한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국산 로봇착유기가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상용화 전략이 필수적이다.

 

로봇착유기의 국산화는 단순한 기술개발을 넘어, 대한민국 낙농 산업의 데이터 독립을 위한 첫걸음이다.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외산 기업들의 20년 역사를 압축해서 성장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생산하는 데이터가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에서 활용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투자와 연구,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한국형 디지털낙농’이라는 길을 개척하고 완성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낙농업의 미래를 위한 필수 과제다.

축산신문, CHUKSANNEWS

관리자 dhkswo534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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