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이일호 기자]
‘맛’ 위한 개량도…“미래 비전 확신 가져야”
다비육종 윤희진 회장.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 양돈산업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거목이다. ‘기부천사’라는 별칭까지 얻을 정도로 ‘나눔’ 에 대한 그의 열정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하지만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과 함께 일선 퇴진을 선언한 후에는 회사 경영 뿐 만 아니라 외부 활동 전반에 걸쳐 윤희진 회장 스스로 ‘존재감’을 지우기 위한 행보를 지속해 왔다.
이런 그가 실로 오랜만에 강단에 섰다.
대한한돈협회가 지난 10월30일 개최한 ‘2024년 전국 청년한돈인 경쟁력 강화 세미나’를 통해 ‘내가 겪은 양돈 50년과 미래 과제’를 주제로 특강을 실시한 것이다.
특히 약 1시간에 걸친 강연 과정에서 평소와 달리 국내 양돈산업계를 향해 애정어린 ‘쓴소리’ 도 마다치 않아 관심을 모았다.
# 다국적 기업 진입 차단 "잘했다"
윤희진 회장은 우선 지난 50년을 되돌아 보며 국내 최초의 의무자조금제 도입과 가축위생방역본부의 전신인 돼지콜레라비상대책본부 설립 등 산업의 주인으로서 양돈인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ASF 방역도 동남아와 비교하면 선방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CP사 등 거대 다국적 양돈계열화사업체의 국내 진출을 막은 것이나, 전 세계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 돼지고기 소비량이 국내에서는 꾸준히 증가하고, 유지되도록 한 것도 정말 잘한 일”이라는 윤희진 회장은 “그러나 지난 50년간 아쉽고, 잘못한 게 더 많은 것 같다”는 시각도 감추지 않았다.
그가 꼽은 첫 번째 아쉬움은 돈사 시설의 규격화 ‧표준화의 부재다.
윤희진 회장은 “베트남만 해도 모돈 2천400두 규모 2-SITE의 CP사 농장을 표준모델로 규격화, 규모화가 이뤄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더운 지방과 추운 지방에 따라 돈사 규격과 설비가 표준화 돼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그나마 만들어진 농협의 표준설계도 마저 ‘허가용’ 일 뿐이다. 저마다 제각각이다 보니 관리효율성이 떨어지고 규격이 없는 기자재로 인해 더 많은 공사비가 투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각기 모돈 1만두 규모의 6층 돈사로 규격화 된 농장 4개소를 한 곳에서 모아두고 연간 100만두를 생산하고 있는 중국의 한 사례도 소개했다.
# 검역 이전 국내 유입 적지 않을 것
질병이 너무 많은 국내 양돈산업의 현실은 가장 안타까워 하는 대목이다.
윤희진 회장은 “휴전선을 넘어 온 것도 있지만 많은 바이러스가 검역 이전에 종돈장을 통해서 전국으로 퍼졌다”며 “국내 사육돼지의 30%가 살처분 된 지난 2010년 안동발 구제역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물론 환경오염에 따른 민원과 안티축산을 확산시키며 규제 양산의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백신 적용의 실기가 초기 진화에 실패한 원인이라며 당시 방역정책을 소환하기도 한 그는 “우리 양돈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다. 이걸 해결 못하면 양돈은 잘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도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종돈산업의 문제점도 잊지 않았다.
여러 갈래의 개량 조직이 체계화 되지 못한채 뒤늦게 정부 주도하에 착수된 돼지개량네트워크사업은 물론 많은 예산이 투입된 ‘골든시드 프로젝트’ 마저 비 전문가 주도하에 이뤄지면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했다.
축산대학과 양돈현장의 연계가 미흡한 현실에도 아쉬움을 표출한 윤희진 회장은 한국 양돈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제안하기도 했다.
# 맛 있으면 찾게 돼 있다
먼저 양돈산업 미래에 대한 2세 양돈인들의 확신부터 강조했다.
윤희진 회장은 “50년전과 비교해 0.5%의 양돈농가만 남았다. 미래를 비관한 99.5%가 양돈을 떠났다”며 ”그러나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의 자리를 뒤로하고 다비육종에 몸을 담은 내 아들이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양돈산업을 바라보고 있다. 만약 통일이 되면 북한주민을 위한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역할도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부터 돼지콜레라와 구제역 백신을 중단한 대만에 부러움을 감추지 않으며 양돈질병에 대한 근본적인 방역대책과 함께 국내산 돼지고기 고급화의 중요성도 잊지 않았다.
윤희진 회장은 “가격 경쟁력을 가지기 힘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맛만 있으면 국내산을 찾게 돼 있다”며 “이를위해 우리만의 개량 목표부터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산업계의 역할 분담도 주문했다.
# 파이프스톤, 양돈고령화 해법
규제가 숨막힐 정도라며 그 개선의 의 필요성을 지적한 윤희진 회장은 10년만에 100개 였던 협동조합을 2개로 통폐합한 덴마크 사례를 전제로, “중앙회, 지역축협, 양돈축협으로 3원화 돼 있는 국내 협동조합부터 통폐합, 이들로 하여금 제대로 된 연구를 통해 기후위기와 인력난, 고생산비를 극복할 수 있는 규격화 된 돈사 모델을 제시하고 새로운 생산체계를 구축할 것”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파이프스톤을 통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가 고령화 속에서도 생산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도 있음을 설명한 윤희진 회장은 “주변을 돌보고 기부도 해보자, 자신부터 행복해 질 것”이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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