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 타는 마음으로 가축을 기르자

  • 등록 2024.10.23 1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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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신문]

김 성 진 소장 
아태반추동물연구소

 

경쾌한 태평소 소리, 흥겨운 꽹과리, 신명나는 장구 소리에 패랭이를 쓴 사내는 떨리는 마음으로 줄 하나에 온몸을 맡긴다. 
두 발바닥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전방을 주시한다.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한 발 한 발 내디딘다. 흥겨운 가락에 취했으나 가슴 졸이는 관중들의 시선이 사내의 발끝에 집중된다. 시선의 긴장감과는 반대로 사내의 몸은 발끝부터 머리에 이르기까지 줄 위에서 평온을 누리고 땅 위에서와 같이 두려움 없는 익살이 보인다. 하지만 그의 팔은 부채를 연신 흔들어대며 중심을 줄 위에 올려놓는다. 그 사내는 외줄을 타는 줄꾼이다.
가축을 키우는 모든 양축가는 외줄을 타는 줄꾼과 비슷한 점이 많다. 가축을 사육하는 자체가 점과 같은 순간이 아니고 줄 같은 선이며 연속된다. 어미소에게 태어난 송아지는 젖을 먹고 성장하여 고기소로 출하되거나 새로운 송아지를 생산한다. 이 과정 중 특정한 시점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양축가는 끊임없이 관리한다. 임신 후기 돋아 먹이기, 건강한 송아지를 만들기 위한 집중관리, 육성기에 양질의 조사료로 반추위 발달 촉진, 비육기에 최대 섭취량 확보는 각각의 관리구간이 끊어져 있지 않고 연속선으로 이어졌다. 양쪽 기둥이 묶여있는 줄꾼의 밧줄처럼 팽팽하다. 조금 다르다면 줄꾼은 짧은 줄 위에 오르고 양축가는 순환되는 시간의 선을 타고 있다.
외줄을 타기 위해서는 밧줄이 강해야 한다. 줄꾼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균형을 아주 잘 잡아야 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은 든든한 생명줄을 만드는 일이다. 가축을 기르는 우리는 줄꾼처럼 신나게 놀 수 있는 기본이 튼튼한 줄을 만들어야 한다. 줄 타는 얘기에서 잠시 문자를 써보겠다. 논어에서 공자는 제자들에게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말을 가르쳤다. 그는 “군자는 근본(根本)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본이 서면 도리가 생긴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라고 하였다. 공자는 기본적인 덕목이나 근본적인 것을 바로 세울 때, 이후의 모든 일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되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이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축을 기르는 자가 기본에 충실하면 가축은 건강하게 자라고 관련한 경제성, 환경과 사회 윤리 개선은 점차 나은 쪽으로 향할 것이다.
가축을 기르는 데 필요한 기본은 무엇일까. 필자는 가축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가를 아는일이 축주 역할의 제일 기본이며 근본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즉 가축이 보낸 하루는 가축의 전 생애주기를 관리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는 가장 중요한 단서이다. 가축의 하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사람과 비교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사람도 하루 일상을 살아간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일어나서 출근 시간에 맞춰 일터로 나간다. 점심 시간이 되면 식사를 하고 커피 한 잔과 함께 나른한 오후를 보낸다. 일과를 끝내면 퇴근하여 집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만약 출근하지 못할 정도로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거나, 평소와 다르게 불운으로 차량 접촉 사고가 나거나, 직장 상사에게 핀잔받아 괴로워하거나, 회사에서 급히 처리할 일이 생겨서 야근을 하면 하루 패턴이 깨진다. 가벼운 문제에서 심각한 일까지 다양한 원인으로 일상과 다른 하루를 만든다. 
이런 상황은 농장에서도 벌어진다. 착유소들은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착유장으로 이동한다. 착유가 끝나면 농후사료를 더 먹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운동장으로 향한다. 이후 허한 속을 채우기 위해 주인이 만들어준 섬유질배합사료 뷔페를 즐긴다. 어느덧 날은 밝아오고 충분히 식사한 젖소는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늘어지게 반추한다.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배가 고파서 농후사료 자동 급이기 통을 뒤지기도 한다. 이런 패턴 반복하다가 오후 착유를 기다린다. 젖소는 이렇게 규칙적인 하루를 보내며 매일 우리에게 평균 30kg 이상의 우유를 준다. 하지만 발정, 유산, 열스트레스, 대사성 증후군, 식체, 파행, 유방염, 백신 스트레스, 설사, 반추위 산증 등에 의해 일상이 깨지기도 한다. 그러면 젖소는 우리에게 우유를 덜 주거나 품질이 저하된 우유를 생산하여 농가에 큰 피해를 안겨 준다.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말로 설명할 수 있으나 가축은 말할 수 없다. 따라서 가축에게 생긴 일상 변화를 감지하기란 쉽지 않다. 원인을 모르더라도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언제부터 발생했는지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일상을 주목해야 한다. 가축의 일상은 패턴을 갖고 있다. 그 패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외줄을 타는 줄꾼의 마음으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사람과 동물은 매일 행동하고 있다. 행동은 일상으로 표현된다. 일상의 행동을 주시하고 팽팽하고 긴장감 있게 모니터링 한다면 작고 큰 사고를 예측하고 미리 방지할 수 있다. 특히 가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질병과 증후군, 스트레스에 의한 피해는 하루 동안의 행동 변화를 유발한다. 문제 되는 이상행동을 찾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축이 하루를 어떻게 사는지 아는 것이 기본이다. 기본에 충실하도록 하자. 그 바탕으로 줄 위에서 줄꾼이 신명 나게 노는 것처럼 우리도 가축을 기쁘게 기를 수 있다. 흥이 저절로 나는 풍악 소리에 부채를 흔들며 긴장감 가득한 줄 위에서 잰걸음 앞으로 뒤로, 위로 아래로 한판 놀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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