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영 연구사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동물유전체과
소, 염소, 양과 같은 가축은 몸 안에 커다란 발효실을 가지고 있다. 그 발효실은 바로 위장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반추위다. 그래서 이들을 반추가축이라 부른다.
반추위는 숙주 동물과 공생 관계에 있는 수십억 개의 미생물로 구성된 복잡한 생태계다. 이렇게 반추위와 같은 특정한 환경 내의 미생물 군집과 그들의 전체 유전정보를 ‘마이크로바이옴’이라고 한다. 반추위 마이크로바이옴은 숙주 동물이 섭취하는 식물성 섬유질 사료에서 복합 탄수화물인 셀룰로오스, 리그닌 등이 에너지로 사용될 수 있도록 당으로 분해하는 소화 작용을 대신한다.
하지만 반추위 마이크로바이옴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소화하는 것을 넘어 동물의 면역 체계를 조절하고, 유해한 병원균으로부터 보호하며, 건강 유지에 필요한 비타민과 기타 영양소 생산에도 관여한다. 또한 새로운 항생제나 기타 화합물을 생산할 수 있어 의학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추위의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 초기에는 반추위라는 제한적인 서식환경 때문에 전체 반추위 미생물종의 약 2% 정도만 분리 배양이 가능했다. 이로 인해 연구자들은 반추위 내 서식하는 미생물들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DNA 염기서열분석을 비롯한 다양한 분석 기술들이 개발되면서 배양이 어려운 미생물들의 유전자 정보를 확인하고 속(genus) 혹은 종(species) 수준의 동정이 가능해졌다.
반추위 미생물에 대한 분석 기술들이 발달함에 따라 몇 가지의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진행되어 새로운 성과들을 보고하였다. 뉴질랜드 등 9개국이 참여한 ‘헝게이트(Hungate) 1000 프로젝트’의 경우 배양이 어려운 미생물들에 대한 참조유전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반추위의 기능, 숙주와 미생물 간의 연관성, 물질분해 기전 등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유럽의 ‘루미노믹스(RuminOmics) 프로젝트’에서는 메탄가스의 발생, 가축의 성장, 우유의 품질 등과 관련된 특정 반추위 미생물 군집을 밝혀냈다. 이를 토대로, 생산성을 유지하면서도 메탄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소 사양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축산과학원에서는 흑염소 반추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통해 새로운 섬유소 분해 효소 유전자를 발굴한 바 있다. 최근에는 한우 반추위 미생물을 대상으로 단일균주를 분리·동정하고, 미생물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유전자 수준에서 기능을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반추위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류의 미생물들 중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특정 기능을 갖는 미생물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말 그대로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와 같아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앞서 살펴본 해외의 사례처럼 기관과 국가 간 협업이 필요하다. 여러 연구자들이 그동안 밝혀낸 미생물의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함으로써 마이크로바이옴의 무한한 잠재 능력이 농업, 환경보전, 의학 그리고 식품산업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축산신문, CHUKSA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