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지인으로부터 돼지 구제역 백신 접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이상육’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상육을 섭취하게 됐을 때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 또 이와 관련한 자료의 확보가 가능한지 여부였다.
이상육을 일부러 찾아 먹는 일은 없을 것이고, 의도치 않은 경우라면 많은 양의 섭취 가능성은 희박하기에 일단 “별 문제야 있겠느냐”는 상식 수준의 답변을 내놓았지만 단편 지식이 전부였던 필자 입장에선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직업적 궁금증이 발동했음은 물론이다.
점차 ‘해묵은 과제’로
한편으로는 양돈농가의 ‘민생’과 직결된, 나아가 국내 양돈산업계에 막대한 유무형적 피해를 유발하고 있는 ‘이상육 이슈’가 연이어 불거지고 있는 새로운 현안들 속에서 마치 ‘해묵은 과제’ 정도로 묻혀지는 듯한 현실에 강한 거부감도 몰려왔다.
이상육 이슈에 대한 해법이 없으면 몰라도 ‘피내접종’이 어느정도 검증된 대안으로 지목받아 왔음에도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더 이상의 진척 없이 양돈농가의 애를 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돌이켜 보자.
단순히 관심 수준을 넘어 지난 2020년 10월 피내접종용 구제역 백신 제품에 대한 농림축산검역본부의 품목허가가 이뤄질 때만 해도 국내 양돈업계는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품목허가 이후 감감 무소식
정부의 상시주 선정 등 국내 축산현장에 공급을 위한 이후 절차에 대해 해당 제품의 국내 공급사는 ‘검토중’ 이라는 설명만 반복해 왔다. 이는 팬데믹 사태가 지나고 국내 공급사가 변경된 이후에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존 제품만으로도 국내에서 견고한 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반면 한국 시장만을 바라보고 피내접종용 백신을 내놓을 해외 경쟁사의 출현도 힘든 상황인 만큼 해당 제품의 제조사나, 국내 공급사 입장에선 굳이 무리해 가며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이유도 없지 않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다시말해 피내접종용 백신을 못파는 게 아니라, 안팔고 있다는 시각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인다. 이상육의 원인을 감안할 때 특정 백신회사가 책임질 법률적 이유가 없는 현실이기에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딱히 이상할게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라면 달랐어야
그렇지만 농림축산검역본부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국내 구제역 백신 시장은 전적으로 정책에 따라 움직이는 ‘특수 시장’ 이다. 국내 양돈농가와 산업계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면 추가적인 백신 기준에 대해 가능성을 타진하고, 백신 공급업체에 요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어찌보면 구제역 백신 접종을 강제화 한 정부의 당연한 책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접종 효과는 유지하면서도 이상육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피내접종을 인정하고 전용 백신 개발까지 추진해 온 검역본부 아닌가.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검역본부의 행보만 보면 이러한 기대와는 거리가 먼 느낌인데다 그나마 피내접종용 국산 백신의 출현마저 요원한 실정이다.
검역본부와 함께 구제역 백신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는 민간사업체 FVC는 지난 10월25일 개최된 구제역 백신 세미나를 통해 국산 백신 생산시설의 공정 등을 감안할 때 당초 계획보다 늦어진 오는 2026년부터 (근육접종용 백신) 양산이 가능할 뿐 만 아니라 피내백신 생산 일정도 이 때부터 본격적인 ‘검토’ 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피내백신의 경우 아무리 빨라야 2027년은 돼야 국내 축산현장에 공급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인데 이대로라면 양돈산업계는 앞으로 4년은 더 무방비로 이상육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구체적인 생산 일정 조차 마련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검역본부의 명확한 설명 뒤따르지 않다보니 다양한 추측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양돈현장에서는 구제역 백신접종에 따른 이상육 피해는 못 막는게 아니라, 안막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피해액 어림잡아 수조원
구제역 백신 접종 의무화 이후 이상육 발생에 따른 직접 피해액만 연간 2천500억원 안팎에 달할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구제역 백신 접종 개시 시점을 고려하면 어림잡아 수조원의 피해가 발생한 셈이다. 이로인해 양돈현장에서는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이 동원, 이 과정에서 백신 접종률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지적마저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당초 기대와 달리 피내접종이 그 확실한 대안이 아닐 수 도 있고, 대안이라고 해도 여러 가지 걸림돌로 인해 막상 국내 도입이 어려울 수 도 있지만 그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상육 피해에 대한 검역본부측의 대응이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 의혹과 논란이 확산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이상육 대책과 관련한 검역본부 차원의 명확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