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이만재 원장(한국낙농유가공기술원)
우리나라에 낙농가 호수가 가장 많았던 해는 1985년이었다. 이때 4만5천760호가 젖소를 길렀고 우유는 100만톤을 생산하였다. 호당 21.98톤으로 하루 생산량은 평균 60.2kg이었다.
그 10년 후 1995년은 젖소를 가장 많이 길렀던 때로 2만3천519 낙농가가 착유우 26만3천651두를 사양하여 199만8천톤의 우유를 생산하였다. 호당 84.9톤으로 하루 233kg이었다. 그리고 7년뒤 2002년은 한국 낙농 역사상 가장 많은 우유를 생산하는 해가 되었고 그해 1만1천716 낙농가가 253만7천톤을 납유하여 호당 216.5톤으로 하루 평균 593kg이었다.
그리고 2022년에 197만5천톤의 우유를 생산하였고, 낙농가 호수는 4천458호로 호당 443톤, 하루 평균 1천214kg을 납유하였다. 지금까지 낙농생산기반의 변동추이를 살펴본 것이다.
낙농가수가 가장 많았던 1985년으로부터 38년 후인 2023년의 낙농가는 10분의 1로 줄었지만 총원유 생산량은 두배로 늘었다. 호당 하루 납유량은 20배나 늘었다. 1985년의 두당 산유량은 5천729kg였고 2022년의 그것은 1만298kg였다. 1.8배가 많아졌다. 그 기간 동안 유질도 세균수 1등급 납유우의 비율이 93%를 넘나들고 체세포수도 하절기 두어 달만 제외하고 70%대를 넘어서고 있다. 우유의 생산성, 위생유질의 수준이 세계 최정상급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나라 낙농가들의 2022년의 호당 평균 우유 판매 수입은 4억8천700만원 정도이다. 기업 수준으로 대형화된 양계나 양돈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규모이지만 그래도 괜찮게 살만한 정도는 된다. 현재의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우리나라의 낙농은 세계 어느 나라와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낙농가들의 굵은 땀방울들과 정부의 지속적인 제도와 예산 지원 등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불과 50년 만에 이루어진 한반도에서의 또 하나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짧은 기간의 최고 성적표라는 점에서 세계 유일의 실적이다. 서방 낙농 선진국들의 200~300년 낙농 역사를 능가하는 것이다.
이 한국의 낙농 생산기반이 점차 빠르게 소멸되어 가고 있다.
필자의 ‘왜 낙농인가’ 제하의 지난 논고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우리나라도 다른 모든 선진국들과 같이 낙농을 국가 대계의 주요 산업으로 간주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다시 재고되어야 할 것은, 낙농기반은 그 구축기간이 워낙 길고 또, 한번 붕괴되면 재건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 우유는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생산되고 그 즉시 팔아야된다는 점, 빨리 부패 되고 대량으로 오랫동안 저장할 수가 없다는 점, 그래서 낙농가들에게는 거래교섭력이 전무하다는 점 등으로 이러한 낙농업의 산업적 특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때문에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2세 국민의 성장을 위하여 반드시 자급 기반을 갖추고 우유를 안정적으로 자급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지속한다는 기본적인 정책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점차 허물어져 가는 우리나라의 낙농 생산 기반을 지속 유지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강구 할 때가 지나가고 있음을 상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올해부터 도입된 원유가격의 용도별 차등 가격제의 시행이 지금까지의 정부가 주도해 온 낙농생산 기반 유지의 뿌리가 되었던 농가지불 원유가격의 생산원가 보상개념의 결정체계를 부분적으로 해체하는 결과가 낙농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하는 낙농가들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더욱이 낙농가의 50%이상이 후계자가 없고 또 60%가 60세 이상의 고령자이며 30%가 아직 분뇨처리를 적법하게 할 수 없다는 현실의 낙농생산 환경으로 볼 때 정부가 지금까지 미루어 왔던 낙농지대의 확보와 설정, 젊은 낙농 후계자에 대한 뉴질랜드형 낙농목장 조성 등 특단의 낙농 생산 기반의 유지를 위한 노력이 절실함을 다시 강조하며 그러한 정부의 제도집행을 요청하는 것이다.
축산신문, CHUKSA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