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중 환 농업연구사(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동물복지연구팀)
# 시작하며
2010년에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이라는 제목의 TV영화가 방영되었다. 이 영화는 2006년 BBC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소처럼 생각하는 여자(The woman who thinks like a cow)’의 소재가 되었던 템플 그랜딘 교수의 생애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그녀는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며 마트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자동문을 혼자서는 지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자폐를 앓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소(牛)는 겁내지 않고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심지어 소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옷을 즐겨 입었다. 소의 행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던 탬플 그랜딘은 스트레스 없이 소들을 모을 수 있는 집결책과 유도로를 고안했으며 이 시설은 북미지역의 많은 곳에 설치되어 사용되고 있다. 현재는 콜로라도 주립대학에서 교수로서 많은 강연을 하고 있으며 동물행동 및 동물복지와 관련한 각종 교육용 영상을 제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자폐증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한 자폐증 계몽 활동가로서 그리고 동물의 보호와 복지 향상에 대해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학자로 인정받는 템플 그랜딘 교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 1947~ )
템플 그랜딘 교수는 1947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그랜딘 교수는 어린 아기 때 이미 자폐증 진단을 받고 보호시설에 맡겨질 뻔했으나 그랜딘 교수의 어머니는 자폐증 진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가정교사의 도움을 받아 어린 탬플 그랜딘에게 말 하는 법, 예의범절 등 사회생활을 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녀가 말을 할 있게 되자 탬플 그랜딘의 어머니는 그녀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녀의 학창시절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자신을 놀리는 아이를 때려 퇴학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어머니와 정신과 주치의의 도움으로 마운틴 컨트리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칼록 선생님을 만나면서 일생일대의 변화를 겪게 된다. 칼록 선생님은 템플 그랜딘의 장애를 창의적이고 가치 있는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일로 이끌어 주었다. 이후 프랭클린 피어스 대학에서 심리학 학사를 받고,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에서 동물학 석사,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동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는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었던 동물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함으로써 동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소를 매우 좋아했는데 그녀의 머리는 늘 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소가 수놓아져 있는 플라우스만 고집할 정도로 소를 좋아했다. 그녀는 늘 소의 행동을 관찰하기를 좋아했는데 사람이 접근하는 방향에 따라 소가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탬플 그랜딘은 이런 소의 행동을 이용해서 손쉽게 원하는 곳으로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깨우치게 되었다. 그녀는 소의 행동특성을 이용한 집결책과 유도로를 설계했으며 이 시설들은 현재 북미지역의 많은 곳 설치되어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그녀의 방법에 따라 소를 유도할 경우 작업자들로 하여금 큰 어려움 없이 소들을 원하는 곳으로 유도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소들도 놀라서 도망치는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탬플 그랜딘은 현재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녀의 동물에 대한 특별한 사랑과 이해에 대한 강의와 교육은 여러 책자에서도 소개된 바가 있으며, 특히 USDA(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미국농무부)에서 교육용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배포기도 했다. 교육용 동영상에서 탬플 그랜딘 교수가 동물의 윤리적인 취급의 중요성과 대상 가축에 대한 이해를 주장할 때 조금은 어눌한 말투가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그녀의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 마치며
탬플 그랜딘 교수는 동물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훌륭한 동물행동학자임과 동시에 자신과 다른 사람의 다름을 이해하고, 남들이 얘기하는 단점을 장점으로 발전시킨 위대한 인물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偉人傳)을 떠올려보면 공통적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었으나 모두가 과거에 존재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템플 그랜딘 교수는 위인이면서 현재 우리와 함께 존재하기에 더욱 각별하게 생각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본인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모자란 게 아니라 다르다’고 말한다. ‘탬플 그랜딘’ 영화의 한 장면 중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제가 뭔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최선을 다했어요. 그분들은 제가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저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도 자세히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중략…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것들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관문이 되었어요. 문이 열렸고, 제가 걸어 나왔습니다. 저는 템플 그랜딘입니다.”
축산신문, CHUKSANNEWS